명대(明代)의 학자 원황(袁黃) 원료범(袁了凡.1533~1606) 선생이 자식을 훈계하기 위해 남긴 '요범사훈(了凡四訓)'....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수백년 동안 개운서(改運書)로서 널리 알려진 명저이다. 제 1 교훈 운명을 세우는 공부 / 5 운곡 선사는 말씀하셨다: 당신 말대로 라면, 명예나 자식뿐만 아니라 당신이 평생토록 받을 자격이 없는 다른 것들이 많이 있다 ! . 금생에 수백만 금(金)을 가진 사람은 과거에 그만한 돈을 가질 공덕을 쌓았다. 수천 금(金)을 가진 사람은 그만한 돈을 가질 공덕을 가진 것에 틀림없다. 굶어죽는 사람은 실제로 그렇게 죽게 예정되어 있다. 오늘 우리가 받는 업의 결과는 단지 우리 행위의 과보이고 외부의 힘과는 무관하다. 선사의 충고는 매우 중요하고 단지 미신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것은 우리들이 미혹해서 성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운곡 선사는 요범 선생에게 안에서 정직하게 반성하도록 했고 이리하여 그가 스스로 많은 자기 과실(過失)을 찾아내도록 했다. 가장 큰 공덕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알아내어 고치는 것이다. 무수한 성인들에게 공물(供物)을 바치는 것은 또한 큰 공덕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량수경(無量壽徑)으로부터 미혹을 돌이켜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더 좋다고 배운다. 수행은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옛날 성인들은 회개하고 개심(改心)하는 것을 큰 덕으로 생각했다. 운곡 선사는 요범 선생에게 그 자신이 일생에서 비단 자식이나 벼슬 말고도 스스로 가질 자격이 없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음을 지적했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관리가 되는 것은 전생에서의 수행하고 공덕을 쌓은 결과이다. 우리가 수 백만금을 가지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갖기 위 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조건이 갖추어 져야 한다. 이것들은 마구잡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금생에 부자가 되기 위 하여는 전생에 남에게 많은 재물을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억지로 우리에게 부를 가져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고 들면 재앙과 불행이 다가온다. “ 화(禍)와 복(福)도 이유와 조건 없이 오지 안 는다. 우리가 그들을 불러오는 것이다. ” 중국 문자를 발견한 옛 사람들은 매우 지혜로웠다. 복(福)과 화(禍)의 두 글자는 조금 다를 뿐이다. 이 점은 조그만 어긋남이 커다란 잘못을 가져옴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명예, 부귀를 가르침에 따라 구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수백만 금 ”은 상류층의 부를 나타낸다. “수천 금”은 중류층의 부를 나타낸다. 전생에 심은 선인 (善因)들에 의하여 사람들은 큰 부자가 되기도 하고 보통 부자가 되기도 한다. 굶어 죽게 된 사람은 전생에 수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다. 인색해서 그들은 남에게 베풀지 않았다. 오늘날 불행하게도 수많은 이런 사람들이 조그만 선행이나 배품도 하지 않으려 한다. 남에게는 베풀도록 권유하면서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권유에는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내생에 궁핍해 질 것이다.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 우리들의 일생은 외부의 힘에 지배되지 않는다. 선사는 하늘도 나쁜 사람들을 그들이 받을 만큼 이상의 고통으로 벌주지 못하고, 착한 사람도 받을 만큼 이상의 행운으로 보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하늘의 뜻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의 진정한 원인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다. 하늘은 우리를 위한 어떠한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 참된 지혜로서 우리는 진리를 볼 수 있다. 부(富)와 귀(貴)도 빈(貧)과 천(賤)도 모두 우리 안에 있다. 예로서, 어떤 사람이 백 세대까지 지속할 공덕을 쌓았다면, 그는 백 세대에 이르는 자손들을 갖게 될 것이다. 십 세대까지 지속할 공덕을 쌓았다면, 십 세대의 자손들이 그 복을 누리며 살 것이다. 2 내지 3 세대에 지속하는 공덕도 마찬가지이다. 자손이 없는 사람들은 공덕이 너무 적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자식을 갖거나 못 가질 운명에 관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손들이 백 세대가 지속할 공덕을 쌓았다면, 백 세대의 자손을 가질 것이다. 인광 (印光)대사는 자주 공자 (孔子)께서 자손들이 백 세대에 지속할 공덕(百世之德)을 쌓았다고 찬양하셨다. 공자는 자기 생각은 조금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나라와 백성에 이로운 일 만을 생각하였다. 그분은 일생을 교육에 바쳤고, 자기의 이상과 희망을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육자였다. 지금까지 70 세대가 넘는 공자의 자손이 지속되었고, 현세의 그 자손인 공 덕성 (孔 德成) 선생은 아직도 전 세계에서 존경받고 있다. 비단 중국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가 공자의 자손임을 들으면 그를 공손하게 대하고 존경하고 따뜻하게 환영한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좋은 씨앗이나 원인을 심으면 좋은 수확이나 결과를 얻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범 사훈에서 우리는 우리가 십 세대가 지속할 공덕을 쌓으면, 십 세대의 자손들이 그 복을 누리며 살게 됨을 읽게 된다. 중국 역사를 통하여, 황제들이 십 세대동안 지속된 청 (淸)나라처럼 많은 세대에 걸쳐 지배할 수 있는 왕국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조상들이 충분한 공덕을 쌓지 않았다면 이 것은 불가능 했다. 오늘 날 사람들은 이 것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필요한 것은 능력, 권모술수(權謀術數), 그리고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쌓은 공덕과 전생에서의 우리의 덕행(德行)이 결합하여 그 결과로 덕 있는 사람들이 우리 가문에 태어나 대가 이어 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가족의 사업이 몇 세대까지 지속되는 것인가? 대만에 동인당(同仁堂)이라는 북경에서 시작된 약국 연쇄점이 있다. 이 약국은 조상들이 쌓은 공덕으로 대를 물려가며 백년 이상 영업 중이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염원으로 자비심 많은 선조들이 이 약국을 세웠다. 이익을 바라지 않고, 이 들은 단지 매우 검소하게 살 수 있음만큼 벌기를 원했다. 이들의 목적은 안락한 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롭게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 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이들은 백년 이상 지속하는 사업을 새울 수 있었다. 만일 후손들이 선조들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약국은 영원히 지속할 것이다. 이들은 공덕을 쌓지 않아 수년 만에 사업이 파산되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2-3세대의 자손들만 지속될 공덕을 쌓았을지 모른다. 중국 사람들은 불효의 세 가지 죄 중에 가장 큰 것이 자식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공덕이 없으면 후손이 끊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많은 부부들이 너무 귀찮을 것 같아 자식 갖기를 원치 않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회 복지제도가 있다. 누가 노인들을 보살피는가? 국가가 보살핀다. 늙어서 그들의 생활을 의지할 자식들의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많은 부부들이 자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들은 60대에 은퇴하여 매월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오늘 날에는, 노인들이 생계를 자식들에게 의존했던 과거보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있어 이 일이 가능하다. 지금은 더 많은 정부가 노인들을 보살피고 있다. 이 제도가 많은 자식들 보다 더 효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 자식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과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 흉년에 대비해 곡식을 저장하는 것처럼, 노년을 위해 자식을 기른다 ” 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우( 尤 ) 선생은 그의 논평에서 “ 이 세상을 초월하는 성인들은 욕망과 집착을 끊고, 미혹을 깨뜨려 지혜를 얻고, 범인의 경지를 떠나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을 가장 큰 공덕의 수행으로 생각하였다. 불행이도, 이 경지의 수행을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 노년을 위하여 자식들을 기른다는 생각은 오늘 날까지 아직 존재한다. 보통 젊은이들이 발심(發心)하여 비구나 비구니가 되 고저 할 때,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전력을 다해 만류한다. 이해를 못하고, 이들은 자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근심이라 생각한다. 불교는 과거,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고, 인생과 우주의 진리를 이해한다. 보통사람들은 오직 우주의 조그만 부분만을 본다. 이 부분에서, 그들은 오직 인간의 영역만을 보았을 뿐이다. 이 영역에서 그들은 오직 현재만 본다. 그들은 과거나 미래를 보지 못 하므로, 부처님이나 보살처럼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비구나 비구니가 될 때, 훌륭한 일 이므로 참으로 가장 기뻐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비구나 비구니들은 세속적인 삶을 버리는데 진지하게 수행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이루지 못하면 3악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가끔 쌀 한 톨 공양이 수미산만큼 크고 금생에 생사의 윤회를 초월하지 못하는 비구나 비구니는 ( 내생이나 그 다음 생에서 ) 짐승처럼 일 하여 그 빚을 갚게 된다고 말한다. 정토 수행자로서, 우리들은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하고 육도 (六道)를 초월해서 정토에 왕생해야 한다. 소승불교 수행자들은 최소한 여러 가지 삿된 견해를 끊어버린 입류(入流)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이 경지는 소승 불교 4 성인의 단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른 수행자는 일곱 번 더 천계와 인간계를 거듭 태어나게 된다. 이리하여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이들은 아라한과를 얻게 된다. 그러나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음으로서 그들은 성취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대승불교에서 성취의 최소 기준은 우리가 집착의 일부를 벗어나고, 88 종류의 삿된 생각과 견해를 끊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것들을 끊을 수 없다면 성취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을 끊어버리는데 성공한 대승불교 수행자들이 초신위(初信位)에 이른다. 여러 가지 삿된 견해를 끊어버린 소승불교 수행자들이 입류의 경지에 이른다. 이러한 성취 없이는, 우리는 여전히 우리들이 진 빚을 갚으면서 끊임없이 육도에 환생한다. 비구나 비구니에게는 이 것은 우리가 비구나 비구니 때 전 우주로부터 받은 모든 공양을 하나하나 갚아야 함을 의미한다. 비구나 비구니에게 수행자들이 바친 공양은 모두 보상을 바라고 주어졌다. 만일 소승불교 수행자들이 입류의 경지에 이를 수 있거나 또는 대승불교 수행자들이 88 가지 삿된 생각과 견해를 끈을 수 있다면, 공양을 올린 사람들은 복을 받게 된다. 그러면, 이들이 공덕의 밭에서 수확을 얻었음으로 우리들이 이들에게 보상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요구들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이 세대의 비구나 비구니들은 그러한 성취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다른 길이 있으니 서방 정토에 왕생을 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취가 불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정토에 갈 수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성취한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정토에 왕생을 구하는 것이 실제로 88 가지 삿된 생각과 견해를 끊는 것보다 훨씬 쉽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이 것들을 다 끊을 필요가 없고, 남은 업을 가지고 왕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들림 없는 믿음과 서원으로 올바른 수행을 하고 끊임없이 아미타 부처님을 생각하면 누구나 다 성취할 수 있다. 부처님은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따라서 우리가 속세를 버리고 비구나 비구니가 될 때, 우리는 반드시 성취해야한다. ♩..心想曲 이뭐꼬(What is the Ego) |
출처 : 선지봉 정사(宣智棒 精舍)
글쓴이 : 정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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