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운명을 바꾸는 공부 / 8

운재 2010. 2. 4. 01:44

원문은 명대(明代)의 학자 원황(袁黃) 원료범(袁了凡.1533~1606) 선생이 
자식을 훈계하기 위해 남긴 '요범사훈(了凡四訓)'....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수백년 동안 개운서(改運書)로서 널리 알려진 명저이다.


운명을 세우는 공부 / 8

무릇 혈육(血肉)의 몸은 운명에 의하여 지배된다하지만,
어떻게 의리(義理)의 몸이 하늘로부터 감응(感應)을 불러올 수 없을 것인가?

여기에서 운곡 선사는 망념과 집착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몸은 실로 운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운명에 지배된다.
우리가 의식하는 마음(意識心) 또는 8식(八識)을 사용할 때,
우리 또한 운명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깨달은 사람들은 그들의 8식을 4지 (四智)로 바꾸었음으로 초월할 수 있다.
8식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운명에 구속되지 않는다.
우리가 깨달음의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면, 우리 또한 깨달은 마음을 사용하게 된다.
현재 우리들은 미혹한 느낌들을 사용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깨달은 지혜를 사용했다면 어째서 하늘로부터 감응을 불러 올 수 없었겠는가?

주석(註釋)에서 우리는
“ 지극한 정성은 금강석도 쪼개고, 하늘로부터의 감응도 불러오고 운명도 바꿀 수 있다 ” 는 것을 배운다.
한(漢)나라의 명장(名將) 이광(李廣)에게 일어난 유명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한때 그와 그의 군사들이 행군하였다.
길 한 쪽에 매우 긴 풀이 있었다.
풀에 일부가 가려진 큰 돌이 있었고 그는 이 것을 호랑이로 오해했다.
그는 즉시 화살을 쏘았고 화살은 목표에 깊이 박혔다.
말에서 내린 후 그의 활 솜씨를 보러 갔을 때,
그는 그것이 돌임을 알고 놀랬다!.
그는 “ 내가 무척 힘이 세 돌 속 깊이 화살을 박았다 ” 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러 번 쏘아 보았지만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할 수는 없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처음 쏜 화살은 망념 없는 지극한 정성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큰 스님 구마라집이 7세 쯤 되었을 때 별 생각 없이 큰 쇠 사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다시 “ 내가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이걸 들어 올릴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는 똑같은 일을 해보았으나 실패했다.
이광 장군은 돌을 사자로 오해했기 때문에 화살을 그 속에 박히게 할 수 있었다.
구마라집 스님은 큰 쇠 사발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았음으로 그 걸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일단 이광 장군이 호랑이가 실제로 돌임을 알게 되고,
구마라집 스님이 쇠 사발이 매우 무거움을 알게 되자,
그들은 전에 한 일을 되풀이 할 수 없었다.
두 사람 다 처음 망념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행동했다.
이리하여 돌이 쪼개져 열리고 쇠 사발이 들려졌다.

이 두 예로부터,
우리는 화엄경에 설해진 “ 사사무애(事事無碍) ”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것은 우리가 망념과 집착을 버려 마음이 상당한 정도로 청정해 졌을 때 이루어진다.
만일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장애가 된다.
그러나 마음이 청정하면 어떤 장애도 없다.
“ 지극한 정성은 하늘로부터 감응을 이끌어낸다 ”
유교는 물질적 욕망과의 투쟁에 언급하며,
우리들에게 그것을 버리고 더 이상 욕망에 영향 받지 않도록 가르친다.
지극한 정성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관무량수경 (觀無量壽經)에 설해진 진심(眞心)이다.
이것이 보리심(菩提心)이고 심심(深心)이고 발원회향심(發願回向心)이다.

서경 (書經) 태갑(太甲)편에 이르듯이 “
사람이 하늘의 보복은 피할 수 있으나 자신의 악행에 대한 보복은 결코 면할 수 없다 ”

우리가 하늘의 보복은 피할 수 있다는 말은
비록 우리가 전생에 죄를 지었다 하여도
그에 대한 보복은 현재의 수행과 금생에 쌓은 공덕에 의하여 바뀌어 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늘의 보복은 정해졌으나 바뀌어 질 수 있다.
“ 그러나 우리의 악행에 대한 보복을 결코 면할 수 없다 ”는 금생의 죄에 관한 말이다.
하늘의 보복은 전생에 지은 죄들에게 주어지나 우리의 운명처럼 바뀌어 질 수 있다.
그러나 금생에 우리가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보복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러한 악행을 계속 하면,
우리는 후회하고 개심할 수도 없고 우리의 운명도 바꿀 수 없게 된다.

과거에 만든 나쁜 원인들이 현재에 촉매(觸媒) 역할을 하는 불리한 조건들을 만나게 되면,
이러한 악행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더 이상 악행을 삼가면, 우리는 불리한 조건들을 진압할 수 있다.
나쁜 원인들은 아직 존재하지만 촉매적 조건이 없이는 이들이 성숙하지 않는다.
운명을 바꾸는 원리는 이 인과 법칙의 조건적 측면에 기초를 둔다.
원인은 과거에 만들어져 변할 수 없으나,
조건은 변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

우리는 뿌린 것을 거둔다.
우리는 원인으로 멜론과 콩 씨를 심을 수 있다. 이러면, 우리는 열매로서 멜론과 콩을 기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멜론 씨로부터 콩을 기르거나 콩 씨로부터 멜론을 기를 수는 없다.
원인은 여기에서 상수(常數)이다.
우리가 수확하는 것은 조건에 의존한다.
우리가 콩을 수확하고 싶다면, 우리는 콩 씨를 심고 멜론 씨를 제거한다.
원인이 발효(發效)하려면 적절한 촉매적 조건이 필요하다.
예로서, 씨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 태양, 물 등의 적절한 조건이 필요하다.
씨들이 심어져 원인이 만들어진 이후라도 우리는 이것들이 성숙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물과 태양을 공급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들은 자라지 않는다.
씨들은 적절한 조건들이 없으므로 열매로 성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들이 전생에 나쁜 원인들을 만들었어도
만일 우리가 금생에 나쁜 짓을 삼가고 잘못된 행동을 그치고 착한 일을 함으로서
우리들은 이러한 원인들이 성숙하는데 필요한 불리한 조건들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
분명히 우리들은 또한 전생에 좋은 원인들도 만들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오직 나쁜 일만 아니면 오직 좋은 일만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생을 거듭하면서 우리들의 행동은 선행과 악행의 혼합으로 이어져왔다.
어떤 때는 선행이 더 많았고 어떤 때는 악행이 더 많았다.
우리가 더 이상 악행을 삼가기만 하면, 이 전에 많은 악행을 한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만일 우리가 나쁜 조건들을 막을 수만 있다면
비록 우리가 조그만 선행들을 했어도 이것들이 꽃피고 성숙할 것이다.

시경(詩經)에
“ 하늘의 마음에 영원히 일치하여 우리 스스로 커다란 행운을 구하다
( 永言配命, 自求多福 ) ” 이르렀다.

이 말은 우리들의 조석 예불의 진정한 목적을 보여준다.
아침 예불에서 우리들은 아미타 부처님의 서원을 상기한다.
저녁 예불의 목적은 하루를 되돌아보고 우리들이 경의 가르침에 따르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조심 했는가를 점검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두 예불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대에는 조석 예불의 내용은 “화엄경 정행품 (華嚴經 淨行品)” 의 3귀의
“ 부처님에 귀의하여 모든 중생들이 큰 길을 깊이 이해하고
큰 이해의 마음을 일으키기를 서원하는 것 ( 自歸依佛, 當願衆生, 體解大道, 發無上心 )“ 이었다.

옛날의 덕인 (古德)들은 현재 우리들의 독송본(讀誦本)을 편집하였고
그 내용은 그 당시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독송이 오늘날 우리들의 수행에도 적합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독송본은 우리들이 이에 의하여
우리들의 허물을 고쳐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수정될 필요가 있다.
똑같은 것이 참회의식에도 적용된다.
만일 우리가 이 의식에 참여하여 청정하지 않은 마음으로 절한다면
우리는 업장(業障)을 소멸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증대시킬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플 때,
약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만일 약이 효험이 없으면 처방약을 바꾸어야 한다.
경을 읽고 참회의 절을 하는 목적은 우리의 번뇌를 치료하기 위하여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데 있다.
만일 이들이 효과가 없으면 더 좋은 처방약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 것이 하련거( 夏蓮居) 거사가 편집한 보왕삼매참(寶王三昧懺)이 오
늘 날 우리들의 문제를 다루는데 다른 비슷한 것들 보다 더욱 적합한 이유이다.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 책의 많은 구절들이 오늘 날에 적합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들의 병과 문제들에 근거하여 조석 독송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조석 예불에 많은 정토수행자들은 정(定)을 닦기 위하여 무량수경을 독송한다.
만일 경 전체를 독송할 충분한 시간이 없으면 아침에는 48원을 포함하는 6장들을 읽고,
저녁에는 32장에서 37장 ( 어떤 번역에는 31장에서 40장까지 인데,
아미타 부처님이 미륵보살에게 하신 말씀이 있는 부분이다 )까지 읽어도 된다.
이 6장들은 인과(因果)와 우리 자신을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에 대한 말씀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하늘의 마음에 영원히 일치하고 우리 스스로 커다란 행운을 구하게 된다.

“ 하늘의 마음 ”은 진여본성(眞如本性)을 의미하며,
문자 그대로 하늘, 땅, 그리고 천신(天神)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이 본성에 합치할 수 있다면,
근본 선행(善行)을 성취하고 본성에 되돌아 갈 수가 있다.

선사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 공 선생은 당신이 관리도 되지 못하고 자식도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것들이 하늘의 응징이지만 그러나 바꾸어질 수 있다.
당신이 다만 덕성을 확충(擴充)하고,
부지런히 선행을 하고,
많은 음덕(陰德)을 쌓기만 하면 된다.

운곡 선사는
요범 선생이 관리도 못 되고 자식도 없는 것은 많은 전생의 악업(惡業)이 쌓인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비록 운명이 존재하지만 고정된 것이 아님으로 변화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온 것은 상수(常數)이지만 오늘날 하는 것은 변수(變數)이다.
운곡 선사는 일어나기로 예정된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덕성을 확충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로부터, 만일 우리가 단지 밖에서만 찾고 바꾸려고 하면
우리는 “ 안과 밖에서 모두 실패한다 (內外雙失). ”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방문이나 창 등의 배치를 바꿈으로서 환경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안과 밖에서 실패한 것을 보아왔다.
겉으로는 그들에게 소득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얻기로 예정된 것만을 얻었다.
이것은 아직 그들의 운명 속에 있는 상수이지 변수가 아니다.

악행을 그만두고 착한 일을 하기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가슴으로부터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선사는 또한 “ 음덕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고 말했다.
음덕은 남들이 모르는 착한 행동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착한 일을 하고 남들이 칭찬하도록 이를 널리 알리면,
이 일들이 이제 칭찬으로 바뀌었음으로 우리는 공덕을 잃어버리게 된다.
착한 일을 하고 동시에 그 공덕을 지워버리면 우리에게 공덕이 쌓이지 않는다.
착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아니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하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이로서 우리의 악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의 공덕이 숨겨진 채로 우리의 악업과 이에 대한 응징이 감소하거나 아주 소멸되는 일이다.
오늘 날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도 남들이 이를 비판하거나 심지어 중상하면,
우리는 억울하다고 느낀다.
왜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도 나쁜 결과를 얻는가?
실제로는 이것들은 좋은 결과들이다.
만일 우리가 좋은 일을 한 뒤에 즉시 칭찬 받는다면,
우리들은 공덕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남에게 숨기면서 공덕을 쌓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래야만이 진실로 착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당신이 행운을 재창조하는 방법들이다.
이러고도 당신이 그 행운을 향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우리가 금생(今生)에 만든 모든 행운들을 즐길 수 있다.
경에 “ 인과(因果)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다 ” 라고 설해졌다.
우리가 금생에 겪는 것들은 전생에서 우리가 한 일들의 결과이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우리가 내생에서 겪게 될 일들을 결정한다.
만일 우리가 아주 부지런히 수행하면,
그 보상을 수확하기 위하여 내생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 대신 금생에 우리가 한 일들의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해 요범 선생은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선행을 쌓아 그 결과를 향유하기 위하여 내생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일의 성패나인생의 실패는 집착에 기인한다.

망념과 집착을 버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수행으로 다져서 열정을 불사르면 필히 성공하리라.


♩..心想曲 이뭐꼬(What is the Ego)

...............................................나무본래자성불

출처 : 선지봉 정사(宣智棒 精舍)
글쓴이 : 정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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